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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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딱 맞는 배역” “악역에 쾌감” “또 연기 변신”
등록일 2009.01.15 조회수 1601

■‘놈놈놈’ 인터뷰

17일 개봉하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15세 이상)은 사치스러운 블록버스터다. 송강호(41) 이병헌(38) 정우성(35).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남자배우 셋을 한자리에 모은 것. 이 영화는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격렬한 보물 추격전을 그렸다. 클라이맥스에서 이들이 삼각형을 그리며 마주 선 장면은 가슴 벅차다. 김지운(44) 감독의 말처럼 “한국 영화 초유의 시청각적 성취”는 단순히 액션의 호쾌함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김 감독과 정우성, 송강호, 이병헌을 만나 ‘놈놈놈’에 대해 물었다.


○ 좋은 놈, 정우성 “밋밋해요? 굳건했죠”

좋은 놈은 여유롭다. 윈체스터 장총을 터미네이터처럼 휙휙 돌리며 말을 달리고 하늘을 날아 악당들을 처단한다.

하지만 정우성의 어깨와 눈빛에는 불필요한 과장이 없다. 좋은 놈은 무심한 표정과 몸짓으로 스윽 잡초를 뽑듯 적을 제거한다. 여유로운 표정은 무한 질주로 일관하는 영화에 적절한 쉼표를 찍어 준다. 이병헌은 “우성 씨가 최고의 연기를 보여 줬다”며 후배를 치켜세웠다.

정우성은 ‘비트’(1997년) 이후 죽은 주인공 ‘민이’의 그림자와 계속 싸워 온 배우다. 본인은 “의식한 적 없다”고 얘기하지만 관객의 눈에 정우성은 늘 성장하는 민이였다.

―그래도 나쁜 놈이나 이상한 놈에 비해 밋밋한 느낌이 있죠.

“밋밋?(웃음) 다른 말로 얘기하면 잔잔하단 얘기죠. 어떤 집단에서 잔잔하게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건, 굳건하다는 의미와 통하겠네요. 호수가 잔잔할수록 파동의 여운이 길죠. 그런 여운을 이번에 맡은 도원이라는 캐릭터가 남겼다고 생각해요.”

정우성은 ‘놈놈놈’에서 비로소 자기 몸에 딱 맞는 옷을 찾았다. 무려 10년 만에.

○ 나쁜 놈, 이병헌 “이미지 걱정? 즐거운 도전”

김 감독과 처음으로 조우했던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은 어쩔 수 없이 나쁜 물에 몸을 담근 천성 고운 남자였다. 호쾌한 발차기 뒤에서 망설이며 흔들리는 눈빛은 스물두 살 범수(드라마 ‘내일은 사랑’)나 서른 살 인우(‘번지점프를 하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놈놈놈’의 이병헌은 팬들에게 ‘이 남자, 변한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안길 만큼 극악무도하다. 게다가 그리 멋들어진 악인도 아니다. 이병헌도 이번에 맡은 ‘창이’에 대해 “별거 아닌 집착에 매달리는 유치하고 단순한 놈”이라고 말했다.

이병헌이 한류 열풍을 타고 일본에 건너갔을 때 한국 팬들은 “당신을 잃을까 두렵다”는 편지를 보냈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지금 그는 일본 팬들에게서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는다. 최근 촬영을 끝낸 할리우드 데뷔작 ‘지 아이 조’에서 다시 악역을 맡았다는 소식에 팬들은 못내 불안하다.

“작년 초쯤 ‘아, 내가 너무 돌다리 두드려 가며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모습을 끄집어 낼 때가 된 거였죠. 악역이 연달아 겹쳐서 좀 망설인 건 사실이지만 과정일 뿐이죠. 쾌감을 즐기고 있습니다.”

○ 이상한 놈, 송강호 “매너리즘요? 친숙함이죠”

‘놈놈놈’의 중심은 이상한 놈 윤태구(송강호)다. 조각 같은 두 미남 사이에서 과연 얼마나 존재감을 발휘할까 하는 의구심은 그가 등장하자마자 사라진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두툼한 백지 같은 배우. 이상한 놈은 영화 내내 마음껏 뛰놀며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 간다.

그는 ‘미남이 아닌데도 관객과 감독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듣고 이해한 다음 관객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 덕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작(多作)이나 매너리즘이라는 얘기도 있잖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굉장히 섭섭하죠. 최근에 쉬지 않고 많은 작품을 한 건 사실이지만 늘 변신해 왔거든요. 어떤 작품에서든 ‘송강호란 배우는 유머를 준다’는 친숙한 이미지가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친숙함은 매너리즘과 다르죠. 오히려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첫 단독 주연을 맡았던 ‘반칙왕’(2000년) 이후 김 감독과는 두 번째 작업. 송강호는 “집요하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의 의지가 더 강해진 것 같다”며 “김 감독이야말로 매너리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 감독한 놈, 김지운 “원래부터 이야기는 없었다”

1시간 남짓 했던 대화. 김 감독은 담배 여섯 개비를 줄줄이 피워 물었다. “이야기의 흐름이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라는 질문에 김 감독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완벽하게 이야기를 만들어서 편집하니까 2시간 40분 정도가 나왔어요.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겠다기보다는 한국에서 이루지 못한 어떤 시청각적 성취를 보겠다는 의도가 컸죠. ‘이야기’는 영화의 한 요소일 뿐이잖아요.”

배우 김혜수는 시사를 보고 난 뒤 김 감독에게 “이 영화 미쳤어요!”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도 “순수 오락영화에 이렇게 광기가 서린 건 처음 봤다”고 했다. “‘달콤한 인생’이 뭔가 계속 감추려 하는 영화였다면 ‘놈놈놈’은 밖으로 다 끄집어내는 영화예요. 사랑한다는 표현을 못하고 머뭇머뭇 주위를 맴돌다가 자멸하는 얘기가 아니라 강렬한 섹스를 통해 진심을 전달하려 안간힘을 쓰는 연애 같은 영화죠.”

―리안의 ‘색, 계’처럼요.

“그렇죠. ‘색, 계’의 웨스턴 버전?(웃음). 정우성이 송강호에게 얘기하잖아요. ‘뭔가 쫓아가면 다른 누군가가 나를 쫓아와.’ 미친 듯이 무언가를 쫓고 쫓기는 욕망. 그런 지옥도의 느낌을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단, 신나고 경쾌하게. 이야기는 잊고, 느낌을 즐겨 주세요.”

동아일보 [연예]  2008.07.15 오전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