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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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명품 배우 이병헌, 똥의 기운으로 대박을 터뜨리다
등록일 2015.12.06 조회수 1998
[김지수의 人터스텔라] 명품 배우 이병헌, 똥의 기운으로 대박을 터뜨리다
입력 : 2015.12.05 21:35 | 수정 : 2015.12.06 09:34


 

 개봉 14일만에 4백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은 대기업의 비자금 정보를 흘렸다가
끔찍한 린치를 당하고, 복수를 계획하는 정치 깡패 안상구를 연기했다./사진=김보하

 

이병헌은 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병헌은 위기의 순간마다 똥 덕분에 기사회생했고, 똥의 기운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정치, 언론, 재계의 추악한 욕망이 어우러져 거칠게 돌아가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가장 웃음이 터지는 대목은 이병헌이 투명 유리로 된 러브호텔 화장실에서 조승우를 옆에 두고 똥을 싸는 장면이다.

그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엉거주춤 똥을 쌀 때, 비로소 관객은 이병헌에게 품고 있던 모종의 경계심을 풀고, “모히토 가서 몰디브나 한잔할까?”라는 영화 막바지의 재담에 포복절도할 정서적 채비를 갖추게 된다. 수치심도 없이 모두가 욕망의 똥오줌을 싸질러대며 타락해가는 이 영화에서, 이병헌의 ‘순수한’ 똥, 솔직한 배설이 조승우와의 브로맨스에 드라이브를 걸며, 궁극적으로 배우 이병헌을 구원하게 된 것이다.

할리우드 진출로 기대감은 한껏 높아졌지만, 이렇다 할 국내 흥행작이 터지지 않던 2012년, 그에게 첫 번째 천만 영화의 영예를 안겨 준 ‘광해, 왕이 된 남자’도 마찬가지. 광대 하선으로 살벌한 궁궐에서 극 중 임금을 연기하던 그가 매화틀이라는 임금 휴대용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한판 똥을 쌌다. “마마! 감축하옵니다” 반색하며 다가오는 궁녀들을 향해, “!!! 오오...지 말라고!!!”라고 외치는 장면은 이 계급의 역설극에서, 천만을 예보하는 웃음보를 선사한다.

이병헌은 영어로 연기로 할리우드 배우이기 전에 한국의 배우라는 기이한 자긍심과 함께.

배설의 시조로서 이병헌의 똥은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의 긴장이 극에 달한 비무장 지대에서 역시나 똥을 누다 이탈된 그는 허둥대다 지뢰를 밟고, 북한군과 마주치자 “그냥 가면 어떡해?”라며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 사건을 계기로 총을 겨누던 남북한 병사들은 초코파이를 나눠 먹으며, 김광석의 노래를 공유하고, 이병헌은 TV에서뿐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인정받는 ‘흥행 배우’로 재탄생했다.

똥과 이병헌은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공포를 이기는 웃음, 권위를 무너뜨리는 바보스러운 일탈로, 이병헌만큼 소박한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배우는 드물다. 관객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배우 이병헌에게 반한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똥이나 싸며, 겁에 질려 숨어 있던 그가, 공포를 이기고 범상한 영웅으로 거듭날 때, 대중은 자신의 구태의연한 삶에 희미하게 깃드는 희망을 본다.

그렇게 그는 실수하는 인간인 동시에 모험을 감수하는 사나이다. 나약한 겁쟁이인 동시에 스펙터클한 영웅이다. 보통 사람인 동시에 위대한 직업인이다. 놀라운 것은 전자와 후자의 시차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토록 파격적인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 없는 배우, 이병헌을 만났다. 아직도 대중 앞에 설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는, 마음속엔 반성문 백 장을 쓰고도 모자란 과거의 비행 청소년 같은 이병헌.

비가 추적추적 오는 가을 저녁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몰디브에 가서 모히토나 한잔하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으로 아시아의 제임스 딘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병헌./사진=김보하

 
-‘내부자들’에서 여관 통유리 화장실에서 똥을 싸는 건 당신의 아이디어였죠?

“네. 한 방의 웃음을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복수를 꿈꾸는 정치 깡패를 연기하면서, 어떻게 유머를 섞을 생각을 했나요?

“빡빡한 사건들 사이에 웃을 수 있는 쉼표가 필요했어요. 개처럼 복수를 꿈꾸는 영화지만, 저도 신나게 한판 놀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손이 잘린 기분은 어땠나요?

“오른손을 쓸 수 없어 갑갑했지만, 그걸 이용해서 웃길 수 있어서 또 좋았습니다. 가짜 손이 칼에 찍히는 장면이나 한 손으로 라면을 먹으며 오두방정 떠는 장면은 저도 혼자 낄낄대며 웃었어요.”

-외모가 점점 더 할리우드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퀭하면서도 센 느낌이 나길 원했어요. 우민호 감독은 ‘케이프 피어’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보이길 요구했지요. 긴 머리, 파마, 문신, 의수… 신체 변형이 컸습니다.”

-완벽주의 배우 조승우가 당신을 친형처럼 생각하더군요.

“현장에서 애드립이 날아다녔어요. 신뢰가 막강했지요. 반면 백윤식 선배는 늘 예상치 못한 의외의 리액션을 해서 경이롭고 또한 난감했습니다(웃음).”

-당신이 생각하는 하이라이트는 어떤 장면입니까?

“조승우와 백윤식 선배가 취조실에서 만나 기 싸움을 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할리우드 작품인 ‘미스컨덕트’에서 함께 한 덴젤 워싱턴과 알 파치노에 비견할 만 합니까?

“영어 연기는 제가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들의 표정과 순발력에 감탄했어요. 알 파치노는 70대 중반에도 연기 열정이 뜨거웠어요. 저예산 영화인데도 리허설을 제대로 하고 싶다며, 뉴올리언스의 극장을 빌려서 할 정도였지요.”



 

 목소리, 육체, 표정 등 연기의 기본기가 튼튼한 이병헌./사진=김보하


 
-알 파치노와 ‘대부’ 이야기를 나눴나요?

“물론입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젊은 알 파치노를 닦달했던 모양입니다. 시칠리 결혼식 장면에서 이태리 말을 못하는 그에게 말을 하면서 움직이라거나, 왈츠를 못 추는 그에게 돌면서 춤을 추라고 했답니다. 차 타고 산으로 가라고 했을 땐 또 운전면허가 없었답니다. 알 파치노가 감독에게 “왜 아무것도 못하는 날 캐스팅했냐?”고 따졌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지금은 거물이 된 알 파치노와 함께 연기한 소감은 어떻습니까?

“처음으로 한 프레임에 걸렸을 때 숨도 막히고 말문도 막혔습니다. 고요 속에서 진땀만 흘리고 있는데, 그가 복화술로 말하더군요 “괜찮아. 계속해. 틀려도 계속해.” 그 순간 한국에서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신인들이 NG 낼 때, 보고만 있지 말고 그 앞에서 농담이라도 한마디 해줘야 했구나… 한국에서 저는 유명 배우지만, 할리우드에서는 가장 작은 트레일러를 타는 언어 핸디캡을 가진 동양 배우입니다. 그렇게 다른 현장에 저를 던져놓고 신인의 조바심을 느끼며 생생하게 살아갑니다.”

-할리우드에서 ‘미스 컨덕트’ ‘황야의 7인’ 등의 작품이 줄줄이 대기 중에 있지요. 혹시 아카데미 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꿈도 꾸나요?

“당치도 않습니다. 할리우드 촬영장에서 영어로 연기한 후, 동료 배우들에게 발음이나 포즈가 어색하지 않았는지 물어봐요. 그럴 때 자괴감이 몰려옵니다. 프로들 사이에 유치원생으로 있는 느낌이랄까요. 때로는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이 시간에 더 좋은 한국 영화를 찍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자책도 듭니다. 이제까지는 운 좋게 액션이나 표정 연기로 해왔어요. 우디 앨런 스타일의 영화라면 어려웠을 거예요.”

-어차피 당신은 규모가 큰 영화에 어울립니다. 한국에서도 미니멀한 홍상수 감독 영화에는 출연한 적이 없지요?

“출연 미팅을 한 적은 있어요(웃음). 저는 홍 감독 영화 주인공이 '찌질한' 감독이나 작가라서 좋아합니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얼마 전 재개봉 했습니다. 15년 전 ‘JSA’의 협업이 없었다면 지금의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의 인생도 달라졌을 겁니다. 두 사람 다 영화계에서 캐스팅 아웃 직전으로, 상업적 증명이 절실한 때였으니까요.

“얼마 전 박찬욱 감독에게 문자가 왔어요. “JSA 리스마터링 중이다. 그때도 느꼈지만 지금 다시 보니 네가 얼마나 잘했는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실감했다”라고요. ‘공동경비구역 JSA’를 경험하면서 감독은 배우가 시나리오에서 볼 수 없었던 경이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걸 알았어요.”


 

 이병헌의 눈은 물기로 빛난다./사진=김보하


 

-판문점에서 레이밴 선글라스를 끼고 막아서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현실의 상황을 깊이 있고 스펙터클하게 재창조한다는 점에서 박찬욱과 이병헌은 같은 영화 유전자를 타고 난 듯싶습니다. 최근에 교류가 있었습니까?

“얼마 전 박 감독님에게 러시아에서 문 닫은 옛날 주유소를 찍은 사진 한 점을 받았어요. 본가에 걸어놨지만 참으로 스산하고 기괴한 사진입니다(웃음). ‘설국열차’를 제작할 때 유럽을 돌면서 찍은 사진이라나요(웃음).”

-정작 할리우드로 가는 날개를 달아준 사람은 김지운 감독입니다. ‘달콤한 인생’이나 ‘악마를 보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고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아시아의 제임스 딘을 발견했다고 좋아했지요.

“외국 관객들은 특히 ‘악마를 보았다’에 환호했어요. ‘악마’는 일종의 고어 무비였기 때문에 한국 극장에서는 공포에 떠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어요. 그런데 선댄스 관객들은 마치 축제를 즐기듯 박수 치고 휘파람을 불더군요. 할리우드 감독들은 ‘악마’의 라스트 신을 테마로 특강도 합니다. 지독한 복수가 끝난 다음 제가 그 허무함에 무릎 꿇고 오열하는 장면에 열광하면서요.”

-‘내부자들’에는 그 허무의 정서가 없죠. 복수의 맛은 화끈하고, 폭력의 수위도 상당히 상당히 높았어요. 그만큼 흥행에 압박을 받은건가요?

“오히려 흥행 기대 수준을 많이 맞췄습니다. 50만에서 4백만 정도로요. 제가 좋아하는 3시간 40분짜리 편집본에서는 손목이 잘리는 장면을 풀샷 부감으로 잡고 사운드도 리얼했죠”

-‘협녀’가 흥행에 실패한 것이 이병헌 때문이라는 자책이 있나요?

“여전히 너무 죄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협녀’ 시나리오를 보면서 저는 이 영화가 지독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장에서 와이어 달고 공중에 들린 후에야 “아! 이건 무협이었지”라는 자각이 들었어요. 2001년 ‘와호장룡’이 개봉하던 시절엔 경기가 좋았지요. ‘공중 부양’과 함께 ‘협’이나 ‘의’가 받아들여지는 정서였어요. 지금은 시대가 달라진 거죠.

-‘내부자들’에서 의리는 배신에 앞선 실용적 가설에 불과합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폭력이 벽돌로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지요.

“자기 살기에 급급해서 의리는 요만큼도 없죠(웃음). 씁쓸하지만 그래서 더욱 현실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요.”

-요즘의 기분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한 치 앞을 모르겠어요. 저는 공상에 젖어 있을 때가 많아요. 호기심이 많고 엉뚱한 사람이죠. 그게 제 연기의 원동력이에요. 설명하기 난감하지만, 지금은 어디에 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이병헌은 점점 더 스펙터클해지고 있으며, 그건 단지 배우 개인의 일이 아니다. 시에나 밀러와 채닝 테이텀 등
‘지아이조’ 팀이 방한했을 때도 그는 청담동 트라이베카를 통째로 빌려서 밤 늦게까지 파티를 열며
한국의 배우들을 할리우드 프로듀서에게 소개했다./사진=김보하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당신의 창의력을 억압한다고 느끼나요?

“가령 “결혼하면 달라질 거야” “아이가 생기면 또 한 번 삶이 바뀌지” 이런 식의 예언적 패턴이 저를 제한하는 느낌이 있어요. 물론 겪어 보니 그 삶이 황홀할 정도로 행복한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으로 저는 더 자유롭게 상상력을 뻗어 나갈 수 있는 저만의 잔뿌리와 촉을 지키고 싶어요.

-아기는 어떤가요?

“시사회 끝나고 새벽 3시에 들어가도 6시면 눈이 떠져요. 아기랑 놀기 위해서요. 상추를 따면 오후에 또 자라듯이, 아기도 매일 조금씩 자랍니다. 아기가 태어난 후, 다른 세상을 살고 있어요. 저는 이유식을 먹이며, 고농축 육아를 하고 있지요(웃음).”

-아들이 태어나면 트레일러를 타고 미국 서부 횡단을 하고 싶어 했지요?

“그 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어서 자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범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과 이탈하고자 하는 욕망. 대부분 한쪽을 선택해서 사는 데, 당신은 양가적 감정을 날 것 그대로 품고 있더군요. 현실을 영화처럼 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요.

“맞습니다. 제 안에는 늘 두 가지 규칙이 충돌해요. 그래서 너는 누구냐? 라는 현실적인 물음에 답하기가 정말 곤란합니다.”

-어쩌면 그 모순 때문에 이병헌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나왔을지도 모르죠. ‘달콤한 인생’을 보세요. 자신의 인생이 왜 누아르가 됐는지, 어쩌다 이런 운명의 장난에 놀아나게 되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그 표정 자체가 너무나 시적으로 느껴졌어요.

“저는 아직도 제가 ‘달콤한 인생’에서 왜 그렇게 당했는지 모르겠어요. 영화 내내 김지운 감독도 잘 모르는 것 같더군요. 왜 한겨울에 고깃덩이처럼 거꾸로 매달며 몰매를 맞고, 땅에 생매장을 당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을까요?”

-당신이 보스에게 모욕감을 줬다지 않습니까(웃음)? 어쨌든 ‘악마를 보았다’나 ‘놈 놈 놈’까지 경험으로 알겠지만, 김지운 감독의 선악의 기준은 늘 모호합니다. 특히나 복수의 이유가 불투명해서 배우가 영화의 맥락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들죠(웃음).

“네. 하지만 현장 편집본을 보면 장면이 늘 그럴싸해서, 다시 기운 내서 하게 됩니다(웃음).”

형벌에 가까운 육체적 위용과 그에 순응하는 표정의 역할로 단련된 이병헌. 이병헌의 표정은 굉장히 시적이다. 이병헌의 표정이 영화의 중심으로 들어와 빛과 어둠을 가르면, 곧 ‘운명의 장난’에 놀아나는 누아르의 거대한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김지운 감독은 말했다. “이병헌의 표정은 하나의 발견입니다. 여자와 우연히 눈이 마주칠 때, 마음이 빼앗길 때, 송두리째 흔들릴 때, 그것으로 인해 파멸해갈 때, 바보 같고 냉정하고 섬세한 뉘앙스…. 이병헌은 폭력적인 영화조차 멜로드라마틱하게 만듭니다."

트라 안홍 감독의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 함께 출연했던 조시 하트넷은 이병헌을 처음 만났던 순간에 관해 이야기했다. 

“병헌을 처음 본 건 ‘달콤한 인생’에서였어요. 그 영화에서 그는 정말 액설런트했어요. 그 안에는 고요함이 있어요. 조용한 강렬함이죠. 트레일러에서 그 영화를 봤는데 정말 흥분됐어요. 아, 내가 이런 멋진 배우와 촬영할 수 있다니! 병헌은 저한테 알랭 드롱을 연상시켜요. 그는 굉장히 잘생기고 카리스마도 있죠. 그래서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데, 바로 그 점이 그를 위험하게 만드는 거죠. 갱스터 영화에 병헌이 잘 캐스팅되는 이유일 거예요. 알랭 드롱도 그랬거든요.”


 

 어릴 적 이병헌은 아버지와 함께 알랭 드롱, 장 가방 같은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컸다. 담장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 홀려서 혼자서 ‘나자리노’ ‘빠삐용’을 보러 가면서 그는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 /사진=김보하



 
-남우주연상은 몇 번 받았습니까?

“다섯 번으로 기억해요. 최근에는 ‘악마를 보았다’와 ‘광해’로 받았습니다.”

-한국 감독이라면 다들 이병헌이라는 배우에게 욕심이 있겠지요?

“아직도 못해본 분들이 많아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하고도 해야 하고,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 영화도 해보고 싶습니다. 봉 감독이 해외에서 만들면, 영어로 연기한다 해도 외국 배우들과 자신 있게 한판 붙어 볼 수 있을텐데요(웃음).”

-당신을 보면 맷 데이먼이 생각납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돌파구를 찾고 유머를 잃지 않는 ‘마션’의 맷 데이먼 말입니다.

“저도 맷 데이먼처럼 화성판 ‘캐스트 어웨이’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그곳 생활이 너무 재미있어서 돌아오고 싶지 않을까가 걱정입니다만(웃음).”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나요?

“네. 돌아가실 때까지 제 아버지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에 나오는 그런 아버지 같았어요. 영화광이셨지요. 할리우드 차이니즈 씨어터 앞 스타 로드에서 손도장을 찍는 자랑스러운 장면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당신 다음엔 누가 손도장을 찍었나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여배우 헬렌 미렌이었습니다.”

-사는 게 꿈꾸는 것처럼 느껴지나요?

“아직도 모든 게 꿈만 같습니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꿈같습니다.”